수많은 축제를 위하여
노르웨이의 숲을 읽었다. 피츠제랄드와 비슷한 느낌이 나는 짧고 모난 부분이 없는 문체,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서 고독과 향수 속에 살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참 좋았다. 이 책의 줄거리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을 감상문에 담을 수도 있고, 이 책을 읽으며 생각났었던 다른 책들을 담을 수도 있지만, 수능이 끝나고 읽다 보니 개인적인 내용과 연결해서 쓰고 싶어졌다.
수능 전날에 많이 무서웠다. 시험 결과 보다도, 지금까지 오랜 시간 들어 준비한 시험을 치른다는 점이 무서웠다. 이 시험이 끝나면, 또 바쁜 면접준비가 시작될지, 아니면 여유로워질지에 대해서도 무서웠고. 조금 과도하게 걱정하는 거 같지만 어른이 되는 것도 무서웠다. 언제(아마 고등학교 3학년 되고 나서)부턴가 수능이 어른의 통과의례라고 생각해 봤는지 그 시험을 앞두니 참 무서워했다.
폭풍은 손에 잡히지 않은 채 상처를 남기고 떠났다. 수능 다음날 내가 한 일은 아침부터 노르웨이의 숲을 다 읽는 것이었다. 평소 등교하는 시간보다 늦게 교복도 안 입고 3학년 면학실로 가서 전세 낸 듯이 방안에 불을 모두 켜놓고 책을 읽었다. 가끔 음악도 들어가면서.
책을 읽으니 어른이 된다는, 어른으로의 통과의례를 거쳤기에 어른이 될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을 떨쳐내는데 도움이 되었다. 성인으로서 고독, 슬픔, 허무, 방황을 경험하는 주인공을 읽었다. 몰입했고, 관찰했고, 그렇게 체험했다. 이런 체험의 경험이 두려움을 눌러주었다.
성인이 되면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같은 반 친구라는 개념은 없고, 지각했다고 청소를 시키지도 않으며, 교복도 입을 필요가 없고, 수업 교재는 돈 주고 사야 한다.
그렇지만 이 책으로 경험했다. 노르웨이의 숲은 단순히 대학생활이나 성인으로서의 주인공의 고뇌를 다룬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뭔가 적절한 시기에 읽은 책이었다.
학창 시절이 다 끝난 것은 아니다. 이 학창 시절이 대학교를 다니며 계속해서 뇌리에 박혀있는 환청과 같은 향수일 수도, 아니면 단순한 과거의 파편이 되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앞날은 모르는 거니까.
그리고 이 소설을 통해 소설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 지금까지는 소설의 의미를 깊은 고찰을 담은 작품에, 주제와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작품에, 감동이 있는 작품에 부여해 주고 나 혼자 향유했었다. 그렇지만 소설 특유의, 어쩌면 본질에 가까운 특성인 대리 체험의 효과를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어른으로의 통과의례는 노르웨이의 숲을 읽으며 이루었을지도 모른다. 자살로 엮이고, 자살로 혼할스러워지는 인간관계에서 방황하는 청춘을 담아내 작품이지만
자살도, 방황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에게는 도움이 되었다. 언젠가 내가 어디에 있는디를 찾고 싶은 순간이 올 때, 다시 이 책을 읽을지 모르겠다.
짧지만 진솔하게 써보려 노력한 노르웨이의 숲 감상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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