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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 대한 욕망을 이야기해보는 유튜브 영상을 보고서

배과니 2024. 1. 6. 01:32

https://youtu.be/qCKH5fUvsPI?si=veuGrGKViYryEjik

 

자주 보는 크리에이터가 만든 예전의 영상을 보았다. 행복을 추구하기보다는 슬픔을 추구하는 경향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해 보고, 여러 참고자료를 더해 나름의 탄탄한 이야기를 전하는 영상이다. 니체의 말, 빅터 프랭클의 말, 보잭 홀스맨의 대사, 그 시절 텀블러에서 겪은 말, 우울함을 원하게 만드는 노래의 가사와 영화의 대사까지 다양한 소재로 이야기를 전한다.


 

 

이 영상을 보고서 감상을 적고 싶어져 이곳에 감상을 적는다.

 

 우리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지만, 사실 괜찮아도 괜찮다. 우울을 원하고 정당화하려는 문화가 오히려 행복을 추구하고 괜찮아하는 것을 진정한 가치가 아닌 것으로 보이게 만든다. 우울을 정당화하려 하고, 원하고, 고상하게 여기는 이런 문화에 나도 어느 정도 빠졌던 적이 있기에 더욱 인상 깊게 들었다.

 

 나는 심리학을 조금 배우고 이제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다 안 것만 같아 자신만만했었다. 그러나, 종합된 자료로 우울을 향한 욕망에 대한 영상을 보니 별 볼일 없는 자만심은 사라졌다. 나조차도 저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구나 하고 깨달으면서 천천히.

 나는 사실 심리학을 전문적으로 배운다면 자살에 대해 더 연구하고 싶다. 사람들의 선택권에서 자실이 하나 둘 없어지면 좋겠다는 막연한 목표가 있고, 괜히 우울을 공유하는 트위터에나 있는 문화가 싫다. 이 영상을 계기로 깨달았다. 정말 멍청한 시도이고 생각이라는 것을, 그들이 어떤 심리일지, 그것이 문화적일 수도 있고, 사회적일 수도 있고. 미디어나 주변에서도 그런 영향을 받는지를 생각하지도 않고서 내가 독단적으로 그들에게 선택권이 없으면 좋겠다고 판단해 왔는지를 알게 되었다.

 

 우울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하지 말라는 말보다는 어떻게 추구하게 되었는지, 왜 추구하게 되는지를 공부하고, 이야기해 보자. 그들에게서 욕망을 빼앗지 말고, 그들을 강압적으로 교정하려 들지 말자. 심리학을 배운다는 사실만으로 다른 사람들의 정신 건강의 정도를 평가하고 건강한 상태로 바꿀 수 있는 권능을 부여받지 않는다. 그들과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기로, 그들이 상담실로 온다면 맞이하며 해줄 수 있는 소소한 말들을 해주기로, 그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한다면 그들을 단순한 우울호소자인 샘플들로만 보지 않기로, 내가 그들과 다르다고 무시하지 않기로 다짐하게 되었다.

 

 슬퍼지고자 하는 욕망은 미디어의 영향과, 언어의 영향과, 과거가 쌓아온 문화의 영향이 복잡하게 섞여 있다. 심리학이나 정신을 다루는 학문이 발전해 더 알아보게 된다면 많은 것들이 섞여서 영향을 주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같이 창백한 푸른 점 위에 사는 사람, 그들 욕망의 근원을 알지 못해도 이웃으로 살아가야 한다. 내담자로 찾아오기 전까지는 환자가 아닌 이웃으로 대하자고, 그들을 인터넷에서 보든, 현실에서 보든, 그러자고 다짐하게 되었다.

 


 

 

가끔은 솔직하게 감상만 적은 감상문도 쓰고 싶다. 책 한 권을 읽으면 마치 그 책은 참고자료가 되고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이 우르르 튀어나와 내 이야기만 하는 감상문들을 많이 써온 것에 대한 반성이다. 그려면서도 감상은 내 마음이 어떻게 변했는지만 쓰고 있다.



영상은 정말 괜찮으니 시간 나면 영어자막을 켜고 보길 바란다.